Ⅰ. 개요
오늘날 학문의 실용성에 대한 강박적 요구가 강화되면서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사실 규명 자체보다 그것이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 하는 쪽으로 연구의 방향이 바뀌어 나가는 흐름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통한다. 그러나 좁은 뜻으로는〈한림별곡(翰林別曲)〉,<관동별곡(關東別曲)〉,〈죽계별곡(竹溪別曲)〉등 한문계(漢文系) 시가는 경기체가(景幾體歌) 또는 별곡체(別曲體)라 하고,〈청산별곡(靑山別曲)〉,〈서경별곡(西京別曲)〉,〈만전춘(滿殿春)〉,〈가시리〉 등의 시가를 흔히 속요라 하고 있다.
관동별곡(關東別曲)》 《죽계별곡(竹溪別曲)》등의 한문계(漢文系) 시가는 경기체가(景幾體歌) 또는 별곡체(別曲體)라 하고, 《청산별곡(靑山別曲)》 《서경별곡(西京別曲)》 《만전춘(滿殿春)》 《가시리》 등의 시가를 흔히 속요라 하고 있다. 반면, 경기체가와 속요는 형태상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1. 硏究史 정리
경기체가는 고려 고종 때의 「한림별곡」을 효시로 조선조 말인 1860년 민규의 「충효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유지했던 국문학의 시가 장르다. 경기체가는 26수에 지나지 않아 수적으로는 비록 적으나, 그것의 문학사적 가치는 우리 시가사에서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영역이
1. 명칭과 범위
일반적으로 고려 시대의 시가를 범칭할 때에 고려가사, 고려가요 또는 고려 장가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그리고 『한림별곡』『관동별곡』『죽계별곡』 따위의 한문계 시가들을 경기체가, 경기하여체가 또는 별곡체라 불러 왔고『청산별곡』『서경별곡』『만전춘』『정석가』『
경기체가의 개념
고려시대 사대부층이 한문투로 노래를 지어 부른 별곡()형식을 경기체가라고 구분
13세기경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조선 초기까지 그 형태적인 명맥을 유지함
사물이나 경치를 묘사 서술하기 위해 한문구절을 나열
각 연의 중간과 끝 부분에 ‘위 경(景) 긔 엇더하니잇고’라는
경기체가는 향유계층의 이념과 역사적 성격, 표현기법에서 서로 판이한 것이 사실이나, 형식에 있어서 연장의 형태나 후렴구와 감탄사 등 형식에 있어 공통점도 엿보인다. 이러한 형태상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하여, 고려시대의 시가를 전체적으로 포괄하여 가요나 장가라는 명칭보다는별곡ϙ
1. 본문 요약 및 보충
1-1. 전시대 시가의 전통과 고려가요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표현방식의 제약과 한문학의 발달로 향가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향가의 뒤를 이어 속요와 경기체가가 등장했다. 그 외에는 불가와 무가, 참요가 있고, 고려중반까지 창작되던 향가와 고려 말에 등장한 시조,
해설이며 신의 강림을 빌던 請拜歌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 노래로 불려지거나 읊어진 서사체라고 할 수 있다. 부족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큰 규모의 제의도 있을 수 있고, 洞祭나 재수굿․진혼굿 등 작은 규모의 제의도 있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종교적 범주를 떠난 개인의 현실적 삶